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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청나라의 운명을 건 청일전쟁. 그리고 너무나도 작았던 조선

안녕하세요!

청일전쟁에 대해서 알아보려하는데,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청일전쟁 자체는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조선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전쟁 이었습니다.

특히나, 조선을 보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게

이해가 가는 형국이라 할수 있습니다.

사실 이 전쟁에서 누가 승리느냐에 따라서

한반도의 주도권을 가질수 있었기에

정말 중요했습니다.

청나라의 경우는 잃어버리고 있던

조선의 주도권을 되찾아야만 했었고,

일본은 군국주의로 나아갈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조선은 누가 이기든 이미 뭐된 상황 이었구요.

상황은 이랬습니다.

청나라는 이미 서양열강들에게

강냉이 다 뽑히고 관짝에 못박기 직전의

상황이었고, 서태후가 국밥 말 듯이 말고 있었습니다.

이미 갈때까지 간 청나라는

양무운동을 통해서 재기를 노리려 합니다.

그렇게 청나라는 힘이 커져가고 있었죠.

그리고 청불전쟁에서 박살이 나서

이미 동남아 쪽의 영향권도 잃어버린 상태이기에,

조선을 더더욱 포기 할수 없었죠.

그리고 뒤늦게 정신차린 청나라는

양무운동을 통해서 힘을 길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힘을 통해서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다시금 행사하려고 하던 상황입니다.

당시 일본정도? 우리가 아무리 개털이라도

양무운동으로 힘까지 길렀는데, 우리가 털리겠어?!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이제 일본의 상황을 봅시다.

일본은 서구열강들이 어떻게 식민지를 진행했는지

이미 두 눈으로보고 답습을 마친 상태 였습니다.

더군다나... 한가지 꿈을 꾸게 되는데,

당시 여기저기 털리고 뜯기던 청나라를 일본도

욕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서구열강들

눈에는 일본도 예외는 아니기에, 시급한 상황이었는데,

식민지를 만들 필요가 있었죠.

 

그게 아니라면, 일본도 청나라나, 조선처럼

박살이 나게 될테니까요.

그래서 조선을 낼름 해버린다음

한반도를 통해서 중국본토로 진출할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일본도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인데,

갑신정변과 임오군란이 정리되면서,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것입니다.

 

이제 청나라와 일본은 조선이라는 곳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던겁니다.

어찌되었든 상황은 이렇게 흘러갑니다.

두나라 모두 꿍꿍이가 있었고,

조선이란 국가는 필수요소 였으며,

조선은 아직 감도 못잡고 있던 때 였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나선건 아닌데,

어쨌든 명분은 필요했던 상황 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국가 모두 명분이 없었기에,

서로 눈치싸움 오지게 하던 시절 인데,

 

조선에서 갑자기 사건 하나가 터지게 됩니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것이죠.

당시 동학농민운동은 상당히 강했는데,

당연히 조선군은 동학군을 진압할 힘이 없었습니다.

이미 개판 오분전인 상황에서 동학군 제압은

어림도 없었죠.

 

그러자 조선 조정에서는 청나라군을 끌여들이게 됩니다.

당연히 청나라 군은 땡큐 였고, 파병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당연히 일본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있을리가 없었고, 이전에 맺은 텐진조약을 근거로

자신들도 군대를 조선으로 파견시켜버립니다.

물론 조선은 일본을 막을 명분이나 힘 조차 없었죠.

이러는 와중에 청나라가 온다더라,

일본이 온다더라 라는 소식이 퍼지자

동학군은 이렇게 하다가는, 조선이 외세에

휘둘릴 가능서이 농후하다고 판단, 조정과 화평을

맺어 버립니다.

 

어쨌든 사건이 진정이 됬으니

조선은 청나라와 일본에게 돌아가주세요

라고 요청하지만 일본이 돌아갈 리가 없었습니다.

그대로 주둔해버리고 이는 광복까지 이어지는데...

얘네가 주둔하는것도 기가 차는데,

내정 간섭까지 해버립니다.

 

또한 경복궁 마저 무력으로 점령해버리게 되죠,

조선은 이런 일본군 상대로 저항을 했지만,

일본군이 고종의 신변을 확보하자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갑오개혁을 주도하게 됩니다.

갑오개혁을 왜 일으키려 했을까?!

간단합니다.

 

조선을 어서 낼름하고 중국으로 진출하고 싶은데,

조선은 아직 청나라랑 깊은 관계에 있었습니다.

아직 일본은 청나라가 부담스러웠고,

이를 순조롭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독립은

필수적 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조선을 독립시켜도

독자적인 힘으로 독립을 유지하기 힘들단건

알고 있었기에, 걱정이 없었습니다.

결국 자신들의 손 아래 두게 될 것을 알고 있었죠.

 

, 일본은

명의상으로만 독립시키고, 일본이 직간접적으로

조선의 독립을 보호하는 그런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물론 이 계획은 꾸준히 끌고 갑니다.

그리고 경복궁을 낼름해버린 2일후

725일 일본은 지금 안산 풍도동인

아산 앞바다 풍도에서 청나라 해군을 기습합니다.

청일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입니다.

이 풍도해전에서 깔끔하게 청군을 이겨버린 일본은

3일후 성환에서 다시 전투를 치르게 되고,

청군은 무려 500명의 사상자를 내고 평양으로 빠집니다.

평양으로 빠질 때 비로소 양국은 선전포고를

공식적으로 하게 됩니다.

이때 평양에 주둔했던 양국의 전력을 보면

청군이 14천명 일본군이 17천명 입니다.

이때 조선은 웃긴 상황이 벌어지는데,

경복궁을 장악한 일본군은

조선군 장위영을 동원했고,,

평양의 조선군은 흥선대원군의 밀지로

청나라에게 붙어버리게 됩니다.

묘한 상황이 연출이 된것이죠...

915일 새벽 일본군 17천명은

청나라 군을 일제히 공격을 하기 시작했고

평양성을 낼름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당시 청나라군 지휘관은 이홍장 이었는데,

얘는 처음부터 자신의 군사들을 잃는것을

극도로 경계했습니다.

자신의 군사가 자신의 권력 기반이었기 때문 입니다.

지휘관이 이모양이니, 조금만 불리해도 퇴각을

지시하고 실행하였고, 일본은 연전연승을 하면서

사기는 하늘을 뚫고 올라갔습니다.

결국 을밀대에서 청군은 항복하였고,

일본은 평양을 장악하게 됩니다.

이때 일본군 피해 180명이나,

청나라는 사망자 2천명, 부상자 4000명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뭐 그냥 개털린거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917

황해해전 에서도 털리게 되는데,

군함수는 비슷하였으나, 체급차이가 일본쪽이

압도적이라 여기서도 털립니다.

청나라는 5척 침몰, 3척 중파 인데,

일본은 4척 손상이 전부였습니다.

만나서 싸웠다 하면 한번도 못이기고

개털리기만 했는데, 이홍장이 굉장히

소극적이었던게 큽니다. 자신의 기반을

잃기 싫은 욕심에, 욕군에게는 밀리면 바로 런 하고

해군은 배를 무조건 지켜야해! 라고 했기에..

승리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지역을 조선에서

청나라 본토로 옮기기 시작합니다.

일본이 쉽게 이러한 결정을 할수 있었던건,

바로 청군의 무력함 때문인데,

딱 봐도 답없어 보이니, 이참에

발해만 돌파구도 열어보자는 심산으로

웨이하이와 뤼순에 공세를 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의 예상대로 진행되어

요동마저도 일본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됩니다.

요동을 잃어버리자 청나라는 이제

장난없이 상군을 투입해서 이 모든걸

뒤집어 엎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죠.

상군을 투입했음에도 개털리는건 여전했고,

이 와중에 대만까지 낼름 해버립니다.

그리고 북경 까지 위협하게 되버리죠.

그러자 정신차린 청나라는

정전협정을 맺어버립니다.

즉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은겁니다.

이 조약을 통해 청나라는 더이상

조선에 관련된 모든것을 포기하게 되었고,

요동과 대만, 그리고 팽호 열도를 일본에게

넘겨 주었으며 2억냥을 배상하게 됩니다.

2억냥이 어느정도 였냐면..

일본 에서 걷어들이는 4년에 해당되는..

세금 으로 굉장한 양 이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요동을 일본 니들이 점령을 해?!

그건 극동을 위협하겠단 소리 아니여?!

좋은말 할때 다시 돌려놔라.. 라고

압박을 하게 되고, 이에 겁먹은 일본은

다른 열강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러자 일본은 요동을 돌려주는 댓가로

3천만냥을 추가로 뜯어내고 반환하게 되고,

요동반환에 힘을 쓴 러시아 프랑스 독일은

이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러한 청일전쟁은 결국 일본의 일방적인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되는데,

이는 일본의 근대화 완성을 알리는 계기이자,

군국주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며,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강하게 가져갈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나라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중간에 끼어서 피해만 보던 조선은

설명해야 암울하기만 합니다...

이 와중에 조선이 했던 행동은 대한제국

선포 였는데, 러시아 가 일본에게 줘 터지면서

이마저도 소용 없었습니다.

청일 전쟁은 일본과 청나라 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지만,

중요한건 청나라와 조선은 망국의 길을

일본은 군국주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는게 큰 의미 입니다.

여기까지 청일전쟁 이었습니다.

어느나라이던, 말기에는 제대로

된것이 없고 안타깝기만 하지만,

조선 말기는 이야기 할때마다

더욱더 안타깝네요.

감사합니다.